2006년 6월 18일 일요일

[내일 02][해리/드레이코]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또 내일 - 01장: 면회 시간

제목: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내일, 그리고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작가: November E. Snowflake
창작일: 2003/6/28
등급: PG
작가의 한마디: 개정본을 올리기까지 너무 오래 지체하여 죄송합니다. 베타를 해 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내용 요약: 호그와트 이후 전쟁으로 점철된 세상에,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전편: 내일







1장: 면회 시간

당신이 잊지 않고 가슴 아파하느니
잊고서 웃는 편이 훨씬 낫다
-크리스티나 로제티, '기억해 줘요(Remember)'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마음속 어느 구석에서 느껴지고 있는 희미한 감각이었을 뿐이었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을 생각해보면 아주 빗나간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예전에는 마법위원회의 전진기지였지만 현재는 야전병원으로 개조해서 사용되고 있는 낡은 병원에 그는 누워있었다. 그들은 그에게 전투 동안에 부상을 당했었다고 말했고,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말했고, 그리고 그들은 말포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 그리고 어느정도 프랑스어를 알고 있는 그에게 그 이름의 의미는 결코 좋은 조짐으로 해석되어지지 않았다. 대체 이런 이름으로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긍정적인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가끔 그는 말포이라는 이름이 정말은 그가 태어난 곳의 지명이나, 아니면 그의 치유기간 동안에 치료사들이 그에게 붙여준 이름 같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결코 얌전한 환자가 아니었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자신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그가 무슨 물건인 양 막대기로 건드리고 쿡쿡 찌르는 병원 스태프 때문에 그의 참을성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몇 달 이전의 일들에 대해서 깡그리 망각해버린 그의 멍청함에 정말로 짜증이 났다. 이 침대에 누워 똑같은 사방의 벽들을 노려보면서 기억을 되찾을 궁리나 하고 있는 것에 그는 진절머리가 났다. 그리고 그는 외로웠다.

큰 키의 붉은 머리카락의 치료사는 어제 그에게 전쟁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축복일지 모른다고 중얼거렸었다. 그는 기억을 잃어버린 것뿐만 아니라 심하게 부상을 입은 상태이기도 했다. 그의 왼쪽 가슴을 가로질러 마치 아이들이 삐뚤빼뚤하게 그린 듯한 비대칭의 지독한 마법의 화상으로 인한 커다란 흉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상처 자체는 치유가 된 상태였지만, 거무스름하고 추한 흉터는 계속 남아 그의 심장 위의 창백한 피부를 덮어 싸고 있었다.

불타는 듯한 머리카락을 가진 젊은 치료사는 작고도 섬세한 얼굴 생김새와 걱정에 잠긴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이 아마도 위즐, 혹은 그 비슷한 것일 거라고 그는 기억을 하고 있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근무 시간일 때의 그녀는 불안과 마지못한 동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곤 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을 아느냐고,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을 이미 알고 있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방에 들어오기 전에 문 밖에서의 그녀의 미묘한, 하지만 충분히 알아챌 수 있을 망설임과, 그의 이름을 부를 때면 살짝 찌푸려들던 그녀의 눈썹 등...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 정말은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오늘 그녀는 지금껏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한 남자와 함께 그의 병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사람은 또 다른 치료사도 간호 마법사도 아니었다. 마르고 단단한 체격의 남자는 그가 입고 있는 잔뜩 구겨진 로브에 새겨진 엠블럼으로 보아 오러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어째서 오러가 그를 만나러 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그는 그의 담당인 오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몇 번이나 베리타세룸을 마시고 그 오러에게서 심문을 받았었지만, 그때마다 그것이 선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악에 관한 것이든 그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들은 깡그리 지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팔에 새겨져 있는 표식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가 이 병실에 갇혀있는 이유임을 그는 알았다. 누구도 그에게 그 표식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병원 의료진들이 그것을 흘끔 바라볼 때마다 목격했던 그들의 몸을 타고 흐르던 전율과가끔씩 타는 듯한 고통으로 표식이 쑤셔왔던 경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는 그것이 결코 좋은 의미의 것이 아닐 거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오러는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덥수룩한 검은색 머리카락을 멍하니 쓸어 올렸다. 그의 안경 렌즈에 병원의 삭막한 느낌의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그는 지쳐보였다. 아직 젊어 보이는 그의 얼굴에 이미 근심의 주름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그는 피곤해보였다. 하지만 말포이를 쳐다보고 있는 그의 시선만큼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드레이코 말포이.” 오러가 말했다.

“다들 그렇게들 부르더군.” 그가 대답했다.

오러는 더 편하게 의자 깊숙이 자리 잡고 앉아 금속으로 된 팔걸이를 따라 그의 손바닥을 미끄러뜨렸다. “네가 여기에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었지만,” 천천히 그가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여기에서 널 보니 조금 충격이야.”

말포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평소에 내가 그렇게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

오러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마치 고통의 경련인 양 그의 한쪽 입가가 아래로 내려가 파르르 떨렸다. “아니.” 그가 말했다. “내가 너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신뢰에 대한 너만의 독특한 실천 방법이거든.”

당황한 나머지 말포이의 눈썹이 순간 움찔했다. “그럼, 너 날 알고 있단 말이구나. 우리 친구야?”

오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것이 왠지 말포이는 묘하게도 슬펐다. “아니.”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친구는 아냐.”

“그럼, 뭔데?” 말포이가 물었다. “이웃? 형제?” 그리고는 그는 망설였다. “설마, 연인?”

그의 말에 오러는 깜짝 놀랐다. 오러는 당황한 시선을 들어 말포이의 차트를 휙휙 넘기며 서 있는 어린 치료사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헛기침을 하고는 그가 대답했다. “졸업 동기. 그것 뿐이야.”

말포이는 눈을 감고 그의 머리를 뒤로 젖혔다. “이제 충분히 알았지? 난 그런 것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아.” 건성으로 치료사를 향해 손짓을 하며 그가 말했다. “내가 기억 못하고 있을 뿐이지, 아마도 여기 있는 위즐이 내 아내나 여동생일지 누가 알겠어.”

그녀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차트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손을 떠난 차트는 커다란 소음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그녀가 몸을 돌려 밖으로 달아나기 전에 그녀의 눈동자 속에 떠오른 고통의 표정을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위즐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오러를 향해 그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뭐 잘못 말했어?”

오러는 그의 머리를 저었다. “저 애는 이 전쟁에서 오빠 둘을 잃었어.” 그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또 한 명의 오빠가 지금 위층에 불치의 환자들을 위한 병실에 누워있지. 그는-” 그의 목은 꽉 잠겨버렸고, 때문에 그는 잠시 말을 멈추어야만 했다. “나을 거라는 희망이 거의 없어.” 겨우 그는 말을 마쳤다.

“이런.” 그의 무릎을 내려다보며 말포이가 말했다. 그의 기다란 손가락들은 담요의 가장자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미안해.”

“그래...”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또 다시 숨을 들이마시며 오러가 말했다. “모두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야. 론은... 마치 형제처럼 나의 아주 가까운 친우이기도 하지.” 그의 꽉 움켜쥔 주먹의 손가락 마디들이 적당하게 탄 그의 피부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결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한해 한해가 지날 때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어. 넌 그것에 곧 익숙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 그는 힘겹게 힘을 삼켰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돼.” 말포이는 고개를 들었다. 계속 오러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돼.” 또다시 그가 말했다.

오러가 시선을 돌리기 전까지 정지된 시간 속에서 그들의 시선은 서로를 향해 못 박혀 있었다.

“네 이름은 뭐야?” 갑자기 말포이가 물었다.

오러는 놀란 표정이었다. “아, 그렇군. 포터. 해리 포터야.”

어쩐지 그에게 꼭 알맞은 이름인 것 같이 느껴졌다. 그의 이름을 발음할 때 왠지 모를 익숙한 리듬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해리 포터. 입 속으로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말포이의 입술들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쉽사리 그의 이름을 발음하기 위한 모양으로 움직였다. 너무나도 딱 알맞았다. “만나서 반가워, 포터.” 그의 손을 내밀며 말포이가 말했다.

살짝 눈썹을 찌푸린 채로 그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포터는 마치 별로 유쾌하지 못한 내용의 오래된 책의 페이지를 머릿속으로 뒤적여보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손을 뻗어 말포이의 손을 꽉 쥐었다. 그들의 손바닥들이 서로 맞닿았다. 포터의 손은 따뜻했고 동시에 건조했다. 그리고 그의 마른 체격에 비추어 보았을 때,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더 커다란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손을 쥐고 있는 해리의 손아귀의 힘은 단단했다. 문득 말포이는 좀더 꽉 그의 손을 쥐어 서로간의 힘의 세기를 견주어보는 내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헛된 시도일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곧 포기해버렸다. 작은 상처자국을 품은 채로 단단한 못이 박혀있는 포터의 손가락들이 그의 손가락보다 더 두꺼웠기 때문이었다. 포터는 힘든 일과 위험으로부터 단련된 남자의 손을 가지고 있음을 말포이는 깨달았다. 포터의 표정은 침착했고, 그의 눈은 어두웠지만, 그의 손은 그것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해리 포터는 모순덩어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말포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그의 손으로부터 가만히 빠져나가고 있는 포터의 손을 마지못해 결국 놓아주었다. 그의 손을 놓자 왠지 방 안이 더 추워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왠지 그 시간들은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포터가 입을 열었다. “가야겠어.”

“이렇게나 빨리?” 실망어린 어조로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해버린 자신에게 말포이는 머릿속으로 엄청나게 자책을 했다. 포터의 눈이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난 단지.. 저기, 이곳으로 날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 공적인 일과 관련된 사람을 빼면 말야. 난, 그래서...”

맞은편의 남자의 시선이 옆으로 돌려졌다. 그리고 냉랭한 표정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그렇지, 네가 그럴 리가 없지.”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말포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시 또 오겠어.”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말에 왠지 그도 놀란 듯 했다.

그가 다시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고 서둘러 말포이는 말했다. “약속하는 거야?”

포터는 조용히 앉아있었다. 묘한 표정이 그의 얼굴 위를 스쳐지나갔다. 다시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에서는 왠지 모르게 도전적인 감정이 묻어있었다. “그래, 그런 것 같군.”

말포이는 그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자신의 말에 무슨 싸움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그가 저렇게 잔뜩 긴장을 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포이는 생각했다. “좋아.” 말포이가 말했다. “기대하고 있을게.” 포터가 의자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몸을 돌리기 전까지 꽤나 오랜 시간동안, 말포이는 그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포터가 떠나간 후, 한 명의 치료사가 문을 열고 머리만 병실 안으로 들이밀어 그의 상태를 확인했을 때에, 말포이는 잠이 들어있었다. 그는 돌로 만들어진 작은 탑과 불타는 듯한 노을과 붉은 망토를 입고 지팡이에 앉아있는 어떤 한 사람의 뒤를 쫓아 넓고 탁 트여진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몇 시간 후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꿈은 안개처럼 흐릿해져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 * *

병원 밖을 향해 걸어 나가던 해리는 문득 지니의 생각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니가 괜찮은지 걱정이 됐던 그는 그녀를 만나보고 나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환히 밝혀져 있는 병실의 복도를 걸어가던 그의 귓가에 고통의 신음소리, 타일 위를 지나가는 작은 신발소리, 그리고 작동 중인 마법의 윙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가 지나온 모든 방들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부상자들로 꽉 차있었다. 해리는 사상자의 수를 보여주는 것보다 전쟁의 참사를 더 근사하게 설명할 수 있을 방법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마녀들과 마법사들이 병원의 문으로 들어왔지만, 그들이 다시 이 문을 나갈 방법은 완전히 회복을 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에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몇몇은 해리의 친구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은 그의 적이었다.

환자들 사이에서 그는 지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향해 지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야위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가끔 해리는 어째서 그들이 연인 관계가 되지 못했을까 하고 고민을 하기도 했다. 지니 위즐리만큼 그에게 충실한 사람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런 순간들 중 하나였다.

“아까 그렇게 나가버려서 미안해.” 그녀가 말했다.

해리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전혀 사과할 필요 없어. 이 일이 네게 얼마나 힘들지 난 알고 있으니까.”

“아직도.”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일을 할 때, 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어. 매일 친구들이 고통 받고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게 쉽지 않아. 그럴 때마나 내 일부가 조금씩 부서져 내리는 것만 같이 느껴져.” 그녀의 한쪽 손이 해리의 어깨에 닿아왔다. “물론, 오빠도 그렇겠지만.”

“그래.” 그가 말했다.

그녀는 힘을 주어 그의 어깨를 한층 더 꼭 움켜쥐었다. “우린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돼.”

해리는 감정에 일렁이고 있는 그녀의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연인으로써의 사랑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인생을 지탱해주고, 그가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는 지지대의 일부였다. 감정에 북받쳐 해리는 갑자기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뺨을 대고는 그를 마주 안아주었다. 잠시 동안 그들은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곧, 그녀는 몸을 움직여 뒤로 물러났다. “또 올 거지?” 그녀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에는 내 마음대로 시간을 낼 수 있을 거야.” 그의 목소리가 꽉 잠겨 있었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곱씹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 하지만 그곳에 있지 않을 수가 없어. 그가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난 어쨌든 그곳에 있을 거야.”

지니는 고개를 숙였다. “난 기적이 일어나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어.”

해리는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우리 모두 다 그래, 진.”

“론 오빠가 그리워.” 그녀가 속삭였다. 눈물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나도 그래.” 그가 중얼거렸다. “가능한 빨리 돌아올게” 해리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무의미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가 그곳에 있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손을 살짝 잡은 채로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 그녀의 자리로 돌아갔다. 해리는 가늘고도 강한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의 어깨는 환자들의 무거운 믿음을 싣기에 충분할 정도로 꼿꼿하게 펴져 있었다. 해리는 지니의 결의에 대해 굉장한 존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오러보다도 악의 힘에 대항하여 엄청난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어깨를 구부리고는 해리 포터는 주머니 안에 그의 양 손을 밀어 넣은 채로 병원의 정문을 나섰다. 그리고는 그를 조롱하는 듯한 햇살 속으로 걸어 나갔다.


* * *

다음날 오후에, 해리는 또 다시 론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법적으로는, 이런 늦은 시각에 병문안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모든 법률들은 해리 포터를 위한 특별한 예외조항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그의 특권을 사용하는데 해리가 주저하지 않게 된지도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그의 근무시간은 가끔 터무니없을 때도 있었고, 그의 스케줄은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같이 아주 잠시 한가한 시간이 생길 때면, 해리는 보통 이곳으로 찾아와 그의 최고의 친우의 주근깨 박힌 고요한 얼굴을 바라보며, 그리고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그 혼자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가끔 그는 론의 대답을 상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해리는 여전히 론의 농담들과 거침없는 말투들이 그리웠다. 그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그의 갈망을 위로하기 위한 빈약한 대체품이었을 뿐이었다.

“오늘은 습격이 세 번이나 있었어.” 팔꿈치를 그의 무릎에 기댄 채로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아즈카반에서는 14명도 더 되는 죽음을 먹는 자들은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말야. 그래봤자 세발의 피밖에 안돼는 숫자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론이 대답이 들려왔다. -하지만 적어도 그 14명은 잡혔으니 그 놈들은 더 이상 죄없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저주들을 걸지 못할 테니깐 그걸로 괜찮잖아?-

“뭐, 그래, 네가 옳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그들이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의 일이지.”

-그들의 유죄에 대한 증거들은 있겠지?-

“그래, 물론, 증거야 있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그가 말했다. 덕분에 그의 머리카락 끝은 평소보다 더 빳빳하게 일어나 있었다. “하지만 증거가 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어. 너도 알잖아, 요즘 재판 중에 얼마나 위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말야. 증거들은 훼손되고, 목격자들은 협박당하지. 그리고, 맙소사! 사실 지금 배심원들을 한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없어...”

-당분간 법원이 배심원들을 보살펴줘야만 할거야.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너도 노력해야만 하고 말야.-

“맞아. 네가 옳아.” 그의 한쪽 손을 움직이지 않는 론의 손 위에 올려놓고는 가만히 꼭 눌렀다. “내가 오러가 될 거라고 했을 때, 처음부터 네가 그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거 알고 있어.”

-모두들 다 그랬어, 해리.-

“그랬지, 다 싫어했어. 내 결정에 환호했던 사람들은 오러들과, 아이러니하게도 날 죽이고 싶어한 죽음을 먹는 자들뿐이었지.”

-언제나 넌 위험에 대한 집착 같은걸 가지고 있었지.-

픽하고 해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위험에 대한 집착이라. 뭐, 가끔은 스스로도 내가 죽고싶어서 환장했구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

-왜 그러는 거야, 해리? 어째서 넌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세우는 거야? 난 정말로 이해가 안돼.-

해리는 그의 머리를 숙였다. “어떻게 나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겠어?”

-여기 구원자 한분 납시셨군.-

그가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구원자라? 너까지 그런 허튼 소리를 할 줄은 몰랐는데, 론.”

-하지만 사람들은 말야,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다구.-

“마음대로 하라고 해,” 그리고는 해리는 짧게 그의 눈을 감았다. “당분간은 난 내가 아닐 테니까. 상관없어.”

-어째서 오러에 지원한거야? 그 사람과 싸우기 위한 방법이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

“정보부 같은 걸 말하는 거야?”

-뭐, 그것도 그중 하나지.-

해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그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난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숨어 지내고 있겠지. 헤르미온느처럼 말이야. 그리고 난 네가 부상을 당한 것도 여태껏 모르고 있을 테고 말야.”

-이런, 내가 한방 세게 당했군, 친구.-

“미안해.” 피곤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미안해. 그냥 단지... 아냐, 난 정보부에 들어갈 수 없었어.”

-어째서?-

“거긴 너무... 현실감이 없어. 너무 머릿속으로만 일들이 이루어지잖아. 난 뭔가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는 일들을 원했어.”

-그래서 네 눈으로 직접 악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말이지?-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마음속을 자세히 조사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해리는 왠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뭐, 그래서 이었을 수도 있겠지.”

-널 그렇게 몰아세웠던 것은 복수 때문이었어?-

해리는 한숨을 쉬었다 “복수라. 괜찮게 들리는 말이네.”

-그럼 적어도 이유는 있었네.-

“내가 복수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해?” 그는 깊게 생각에 잠겼다. “악에 승리해서 마법세계와 머글세계 모두를 위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고귀한 목표는 도대체 어딜 가버리고?”

-오, 물론, 그것도 원했겠지. 하지만 넌 해리 포터잖아.-

“난 해리 포터야.” 멍하니 그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만약 네가 해리 포터였더라도, 악에 의해 일어난 전쟁에 네 개인적인 감정을 완전히 배재하지는 못했을 거야.”

해리의 머릿속에서 론의 목소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조용히 앉아 그의 친구의 숨소리를 들으며 저물어가는 일광(日光) 속에서 길어져가고 있는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네 방의 창문은 동쪽으로 나있구나.” 뜬금없이 해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예전어도 그 말 한적 있었잖아. 지금 아무것도 못 보는 나에겐 그거 별로 좋지도 않아.-

“네가 깨어나면, 해가 뜨는 것을 창밖으로 바로 볼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에 대한 대답으로 론의 불만어린 격렬한 고함소리가 거의 해리의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알아, 알고 있어.” 킥킥 웃으며 그가 말했다. “이른 아침은 결코 네가 좋아하는 시간은 아니지.”

-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호그와트에 다닐 때 어떻게 네가 그렇게 이른 시각에 일어날 수 있었던 건지 난 절대로 이해가 안 갔었단 말야.-

또 다시 창가를 향해 해리의 시선이 돌려졌다. “난 해가 뜨는 것을 보는걸 좋아해. 굉장히... 위안이 됐거든.”

-어떻게?-

그의 목소리는 낮아져 있었다. “그건 약속이었으니까. 어김없이 뜨는 해는 새로운 하루에 대한 약속이잖아. 그리고 내일이 왔다는, 그리고 또 다시 내일이 올 거라는 분명한 증거이고 말야.”

-내 친우는 철학자였군.-

해리는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가끔은 내게 위안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뜨는 해밖에 남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

-그럼 지는 해는 어때?-

해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건 배신이야.”

* * *

병원을 나가는 길에 해리는 드레이코 말포이의 병실 앞에서 다시 한번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서쪽을 향해 있는 창문을 통해 그의 침대까지 흘러 들어온 금빛의 햇살 속에서 잠들어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해리는 왠지 안심이 됐다. 아마색의 머리카락에 반사된 빛이 그의 평온한 얼굴 주위에서 묘한 느낌의 빛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해리는 그림자 속에 서서 조용히 잠들어 있는 갸름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냉소도, 비웃음도, 찌푸림도 없었다. 저렇게 평화스러운 모습의 말포이는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저런 모습의 말포이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 갑자기 기억이 났다.

해리는 벽에 등을 기대었다. 감각의 파문이 그의 온 몸을 휩쓸고 있었다. 그는 인정하기를 거부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고통이었던 것 같았다.“빌어먹을 놈.” 악다문 이빨 사이로 그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놈.” 그의 두 손은 어느새 단단히 주먹이 쥐어져 있었다. 조금씩 무릎이 떨려오고 있었고, 때문에 천천히 벽에서 미끄러져 내리던 해리는 어느 순간에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주먹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손가락 마디에 그의 우둘투둘한 흉터가 느껴졌다. 따뜻한 태양과 소독약 냄새가 났다.

“빌어먹을 놈.” 해리는 속삭였다. “어떻게 넌 잊어버릴 수 있는 거지?”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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