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9일 월요일

[은총 01][카스티엘/루비] 안개의 계절


제목: Season of Mists
작가: girlupnorth
창작일: 2008-12-2
페어링: 카스티엘/루비
등급: strong R
분량: ~3,400 단어
스포일러: 4.10 Heaven & Hell. 작품 배경은 4.4 와 4.9 사이
경고: 신성모독, 약한 bdsm
제공(credit): 모두 novin_ha님의 탓이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은 거의 50 대 50이고 신학적인 부분은 모두 제 생각입니다.
4시즌 - 제가 본 유일한 시즌 - 에서 모르는 부분은 위키피디아나 좋은 사람들을 통해 보충했고, 또한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제목은 닐 게이먼의 <샌드맨>에 인용된 존 키츠의 시, <가을에 부쳐>에서 따 왔습니다.
베타를 맡아 준 novin-ha님에게 정말로 고맙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붙잡힌 모두에게 미안해요.
헌정: 오직 하나뿐인(♥) novin_ha님과 제가 글을 쓰도록 이끄는 그녀의 강력한 능력에 바칩니다.





안개의 계절


산 사람의 몸을 차지했을 때가 훨씬 더 살아가기 쉬웠다.

그 땐 모든 게 편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몸의 주인이 먹기, 잠자기, 씻기 같이 지루한 활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마음 내키는 대로 들어가고 나갈 수 있었다. 잠잘 곳도, 돈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루비가 새로 마련한 은신처는 욕실이 딸려 있고 붐비는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정도 쾌적한 호텔 방이었고, 그녀는 샘이 주문 없이 악마 퇴치하는 법을 연습했던 사내에게서 훔친 돈으로 숙박비를 냈다. 여기는 퍽 큰 도시였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곳보다는 수천 명의 사람들 사이에 숨는 편이 자신이 발각되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적을 쫓아낼 고대 주문과 방어진을 꾸며 놓았다. 그녀는 싸움 한 번 하지 못한 채 지옥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루비가 방으로 돌아와서 방어 주문이 깨져 있고, 천사가 벽에 기대 서 있는 광경을 목격한 때는 그녀가 범퍽, 미국의 땅끝에 윈체스터 형제들을 두고 떠나오고서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

천사들은 그녀가 태어나기 오래 전에 지상을 떠났기에, 인간으로 살던 시절이든 악마가 되고 나서든 루비는 지금껏 천사라고는 아무도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릴리스는 천사를 만나 보았고, 수천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스스로 생각할 줄도 모르는 살인마 개자식들, 늘 그녀가 이렇게 일컫는 존재들을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현재 루비는, 자신이 여전히 열쇠를 쥐고 있었는데도, 문이 등 뒤에서 저절로 닫히고, 철컥 소리를 내며 잠겼을 때- 지금까지 느껴 본 두려움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처음으로 죽었던 때, 그녀의 의식은 목을 물어뜯는 지옥의 사냥개의 이빨이 아니라, 신경 거슬리게 집 밖에서 풍겨 오는 꽃향기로만 향했었다. 지금, 천사가 그녀를 흘끗 보자, 갑자기 그녀는 천사의 눈에 감도는 맑은 파란빛밖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이제쯤은 심리학에서도 이렇게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리는 기분에 이름을 붙였을지도 모르겠다.

“무얼 기다리지? 그냥 얼른 죽여.” 일분 남짓 정적이 흐른 뒤 루비가 말했다.

“나는 너를 죽이러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천사가 대답했고, 질문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투로 덧붙였다. “우리를 도와라.”

*

루비는 탁자 앞에 앉았지만, 천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깨진 주문을 제외하면, 방 안에 있는 물건은 모두 제자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천사가 자신의- 악마의 사생활을 배려했기 때문에 방을 고스란히 두었던 것일까 미심쩍게 생각해 보았다.

“당신들을 돕는다고.” 그녀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텍사스 주 윌머에 봉인이 하나 있다, 릴리스가 개방하려고 하는 육백 개의 봉인 중 하나지.” 그가 말했다. “그곳에 가서 봉인을 파괴해라.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라, 윈체스터 형제에게도, 릴리스에게도.”

천사만 아니었더라도, 그녀는 당장 그와 싸웠으리라. 그러나 현실에선, 그녀는 질문만 했을 따름이었다.

“왜 나지?”

“그 봉인이 너희 같은 존재들은 해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지. 악마만이 근처로 갈 수 있다.” 그가 설명했다.

“하지만 왜 하필 나지? 지상엔 다른 악마도 수백만 명은 있는데.” 루비가 항의했다.

“너와 말싸움할 생각은 없다.” 그가 말했다. “내가 말한 대로 하는 편이 너에게도 가장 이로울 거다.”

“왜지, 내가 릴리스를 미워해서?”

“내가 너를 소멸시킨다면, 절대 돌아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지.” 그는 간단하게 말했다. “거짓말과 배신을 딛고 지옥에서 기어나오는 일 따윈 다시는 없다. 그저 잊혀지겠지.”

*

텍사스 주 윌머에 봉인이라고는 없었다.

고대 주술이 걸린 우물이 하나 있는 데 지나지 않았다. 봉인일지도 모르지만, 그 장소는 악마뿐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종족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만약 이 장소가 큰 그림에서 어떤 의미가 있었다면, 카스티엘은 우물의 존재를 알자마자 깨끗이 없앴을 것이다.

사실은, 악마가 임무를 성공하는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그녀가 충성을 바치는가를 판단하는 일에 비하면.

카스티엘은 악마를 천국의 일에 끌어들이는 것이 이 단계에서 현명한 수단인지 완전히 자신하지 못했지만, 이 시점에서, 그녀는 이미 윈체스터 형제와 무척 가까워져 있었으니 그녀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천사도 인간도 걸을 수 없는 길이 존재함은 사실이니, 그 길에서는 그녀가 쓸모가 있을지도 몰랐다.

악마는 임무를 완수했고, 솜씨도 상당히 좋았다. 성공에 힘입어 대담해진 그녀는 건방지게도 그들이 두 번째로 만난 내내 그에게 반항적으로 굴었다. 이번 특명은 지난번에 그가 그녀에게 수행하도록 시킨 시험보다는 조금 더 중요했다.

“난 이제 뭐야? 천국에 고용된 거야?” 팔짱을 끼고서 그녀는 물었다. “나도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고.”

“네... 일이 뭐든 그것보다는 이게 우선이다.”

“어차피 말이야, 내가 천국에 무슨 책임이 있지?”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는 양 그녀는 말을 이었다. “내 영혼을 팔았을 때 인연은 다 끊겼는걸.”

대답하는 대신, 카스티엘은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은 환해지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뉴스가 그치고 조용해졌으며, 악마는 새어나오는 그의 권능을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인간은 이천년밖에 지나지 않아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잊었지만, 악마는 아마 이만년이 지난다 할지라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카스티엘은 악마의 얼굴에 떠오른 공포에 질린 표정을 음미했다. 자신이 너무 과하게 즐겼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물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그녀는 자신과는 상대도 안 되게 비천한 존재다. 그러나 천사에게 교만이란 위험한 감정이다, 그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기억했다.

“벌써 말했지 않나, 종말을 멈추도록 우리를 돕는 편이 너한테도 이로운 일이다.”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그는 말했다. “우리가 승리하는 때가 오면, 악마 같은 존재들은 영원토록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테니.”

그녀는 잠시 동안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 만일 지옥이 승리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날 턱이 없다.”

“-릴리스는 직접 나를 처단하겠지. 당신이 옳아, 나는 완전 신세 조졌네.”

카스티엘은 그녀가 고른 단어 때문에 인상을 설핏 찌푸렸다. 진을 빼 놓는 대화였다. 그는 그녀가 말꼬리 잡는 일만 그만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네가 자초한 일이지.” 그는 다시금 그녀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 주고는, 사라졌다.

*

두 번째와 세 번째 임무의 사이 어느 시기부터 그녀는 자기 처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장래에 그가 그녀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녀는 판단했다. 그녀가 그가 내리는 명령을 따르고 천국에게 쓸모가 있는 동안엔, 그녀는 안전할 터이다.

그녀는 이 때문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가 옳고, 그녀가 천국을 위해 하는 일도 어떻게 보면 이치에 맞는다는 사실 때문에도 부아가 치밀었다.

그럼에도 아직은 이 상황을 그녀가 이롭도록 써먹을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루비는 결심했다. 달리 본다면 누군가에게 “호의”를 이끌어낼 수단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고, 그녀는 자신이 아마 천사가 자신을 신뢰하도록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몸은 그 안에 깃든 존재가 생각하는 방식에 확실히 영향을 미친다. 그녀야말로 이 사실을 처음 깨달은 이일 것이다.

그는 남성의 몸을 걸쳤고, 루비는 언제나 남자들과 잘 지냈다. 게다가 누가 뭐라고 말하든, 천사들은 감정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칼과 비슷하게, 악마를 죽일 수 있는 유물을 몇 가지 찾아오라고 그녀에게 말했고, 그녀가 그 임무에 들어갈 짬을 내기도 전에 가지러 왔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런 물건을 그냥 길바닥에서 주울 수는 없어.” 천사가 실망감을 드러내자 그녀가 말했다. “하나를 세인트루이스에서 발견했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만도 한나절은 있어야 해.”

“네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그가 대꾸했다.

루비는 자신이 고분고분 돕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음을 되새기고, 그녀를 곧장 심연으로 떨어뜨려 줄 말이 한가득 혀끝까지 기어 나오는 것을 이를 악물고 도로 삼켰다.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녀는 말하고서, 탁자에 놓인 서류 무더기에서 쪽지 몇 장을 끄집어냈다. “난 이런 검을 찾을 수 있는 장소 목록을 이미 만들었다고, 당신이 더 찾아보라고 할까 봐서.” 그녀는 한 장을 천사에게 쥐어 주며, 손으로 그의 팔을 쓸어내렸다. 그는 그녀를 흘낏 보았지만, 아무 말 없이 쪽지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나는 미국을 떠나진 않겠어.“

“그럴 필요는 없겠지.” 종이를 손에 쥐고 넘기면서 그가 말했다. “다른 대륙에도 정탐병이 있으니.”

몇 분 뒤 그는 고맙단 말 한 마디 없이 날아가 버렸다. 루비는 눈동자를 굴렸다.

*

“이것들은 악마뿐만 아니라 원래 몸의 주인이었던 인간도 죽여.” 악마는 그에게 검 몇 자루를 주면서 말했다, 단검 두 자루와 작은 칼 하나였다.

“안다.”

카스티엘의 손이 닿자마자 유물은 이곳에서 사라졌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 물건들이 급히 필요한 곳으로 갔다. 그는 그녀가 이것들을 손에 넣는 일에 결정적인 도움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악마가 아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그녀는 바보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 모든 일이 얼마나 쓸데없는 심부름인지 안다면, 그녀가 아직 입을 다문 이유는,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거나, 속으로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중이기 때문이리라. 양쪽 다라고 봐야 옳겠지.

“신경 안 쓰여?” 그녀가 물었다. “나는 천사란 인간을 수호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하는 줄로만 생각했는데.”

“우리가 인간들을 죽여야만 하는 때가 되면 늘 마음이 좋지 않지.” 그는 느릿느릿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을 때만 그렇게 한다.” 그는 탁자 옆 늘 앉는 자리에 앉은 채로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악마를 보았다. 그녀는 오늘 재킷을 입지 않았고, 목이 깊게 파인 셔츠와 가슴골로 길다랗게 늘어진 목걸이만 걸치고 있었다. “왜 그러지?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신경 쓰이나?”

“그럴지도 몰라. 조금은.”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단지 내가 악마라는 이유만으로 마구 인간을 학살하고 돌아다니지는 않겠어.”

“그 때문에 너는 샘 윈체스터를 가르쳐서 흑마술과 악마 퇴치법을 훈련시킨 건가?” 그는 단순히 궁금증에서 물어 보았다.

악마는 흠칫 놀랐다. “당신이 그걸 알고 있었어?”

“우리는 인간을 수호하지. 항상 끼어들지는 않더라도.” 카스티엘이 말했다. “우리가 네가 어떻게 샘의 영혼을 위험에 빠뜨렸는지 알았을 때, 형제들 몇 명은 너를 죽이고 싶어했다.”

“그러면, 당신은 왜 날 죽이지 않았지?”

“하느님께서 그러지 않길 바라셨기 때문이지.” 그가 말했다.

그는 악마가 이 뜻밖의 사실을 듣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러는 대신에 능글거리며 웃었다. “아. 그러셔.”

둘 모두 자신들이 처한 위치를 잘 아니만큼, 그는 권능을 드러내 보여주는 일은 그만둘 작정이었지만, 이 말이 그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한순간에 순수한 힘이 방 안에 파문을 일으키자, 악마는 까만 눈이 되어 숨을 쉬려고 안간힘을 썼다. “감히 하느님을 비웃지 마라.” 그가 말했다.

그녀는 시선을 피했다. “난...”

“됐다. 그만.” 그가 말했다. “이제. 너는 미노슨이라는 악마를 찾으러 가거라. 릴리스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지금 그들은 갈라졌다. 너는 그가 봉인과 종말에 대해 무얼 아는지 알아내고, 돌아와서 내게 전부 보고하여라. 알겠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카스티엘은 말하고서, 모습을 감추었다.

*

이주일이 지난 후, 루비는 이제 레노에서 작은 카지노를 운영하는 미노슨을 찾아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베티스와, 크레실과, 다른 몇몇 하급 악마들과 대화했다.

“릴리스는 무슨 봉인을 깨뜨릴 작정인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녀는 천사에게 말했다. “나는 그녀가 그 당시에 과연 봉인에 대해 알긴 했는지 의심스러우려고 하는데.”

“이 계획을 궁리하느라 그녀가 시간을 들였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가 말했다. “무얼 아는 사람이 있을 테지. 너는 바로 그 악마를 찾아내야 한다.”

그는 피로한 표정이었고 목소리에도 피곤이 어려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도 좋은 순간이라고, 루비는 판단했다. 그녀는 손을 뻗었고 천사의 어깨를 천천히, 조심스레 주무르기 시작했다.

“당신은 좀 쉬어야 해.” 그녀가 말했다. 천사는 몸을 굳혔지만, 그녀가 잠시 동안 그를 계속 만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다만 루비의 손가락이 그가 한 넥타이 매듭으로 다가가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다지 거칠지는 않은 태도로, 떨쳐냈다.

그녀는 “이러지 마라.” 라는 말을, 좀 당황하는 모습을, 어쩌면 화내는 모습까지도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는 대신, 천사는 몸을 일으키고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넌 여기에 머문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안 그런가?”

영문 모른 채, 루비는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문밖에 악마가 서 있군.” 그가 말했다. “숨어라.”

천사가 문을 박살내는 사이 그녀는 가까스로 침대 뒤로 몸을 던졌다. 루비는 비명 소리와, 사람의 몸이 내팽개쳐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서, 얼마 동안, 방은 그녀가 견디기엔 너무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아는 자인가?” 천사가 물었다. 루비는 몸을 일으키고,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고, 미동도 없는 몸이 누워 있는 방 가운데로 왔다. 그 남자는 체격이 호리호리하고 회색 옷을 입었으며, 별반 특징이 없는 편이었지만, 루비는 왼쪽 귓불에 달린 귀고리를 보고서 그를 알아보았다.

“베티스와 이야기할 때 그를 봤던 것 같은데.” 그녀가 말했다. 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짓을 하자, 그 몸은 사라졌다. 그리고서 그는 문을 닫았다.

“뭐-” 루비가 말을 시작했지만, 천사는 그녀를 무시했다.

“인간은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아직 살아 있더군.” 그가 말했다. “너는 다른 곳으로 몸을 옮기는 것이 좋겠군. 여기에 머무는 건 위험할지도 모른다.”

"옮긴다고.“ 그녀는 의심스러운 듯 그 말을 따라했다. ”그래서 그게 다야?“ 그녀가 말을 계속 잇자 천사는 놀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여기로 날 찾아온 건 당신 잘못인데, 당신은 날 보고 몸을 옮기라고 말해? 그래서 그놈들이 또 날 찾아내면, 당신은 뭐라고 할 작정이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고마움을 모르는군.” 지겹다는 듯 그가 말했다.

“아, 무섭네. 살려 줘.” 그녀가 으르렁거렸다. “내가 무얼 고마워해야 하지? 내가 천국의 똘마니가 되는 바람에 모든 이들이 날 처단 목록에 올린 것? 제발 관둬.”

천사는 그녀의 개인 공간을 침범하며, 단 몇 센티미터만 떨어진 위치까지 가까이 다가와 섰다. 그는 격노한 상태였고, 루비는 그의 그런 표정조차도 눈을 사로잡는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넌 네 처지를 잊었군.”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얼 할 작정이지, 응?” 그녀가 물었다. “죽일 거야? 상처를 낼 거야? 칠 거야?” 그녀는 그의 손을 붙들고 자기 엉덩이에 가져다 댔다. “어디 한 번 해 보지 그래. 보고 싶은데.”

천사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바뀌었다, 이제 그는 분노보다 재미있다는 감정이 강해진 듯했다.

“할 거야, 말 거야?” 그의 손은 아직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이윽고 그는 그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고 둘은 물어뜯다시피 격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루비는 그에게 몸을 밀착했고, 그의 셔츠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천사는 그녀의 블라우스를 벗기고, 의자 위로 던졌다. 그들이 침대로 움직이는 동안, 그들이 입었던 나머지 옷도 그 위에 쌓였다. 루비는 등을 대고 누워서는, 천사를 자신 위로 끌어당기려고 했지만, 그는 잠시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면서 멈추었다.

“엎드려라.” 그가 말했다. 루비는 눈썹을 치켜 올렸지만, 그 말대로 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등줄기를 따라, 어깨뼈 사이부터 엉덩이까지 천천히 쓰다듬었다. 루비는 앞일을 예감하며 숨을 삼켰다.

“뭘 망설이는 거야?” 그가 자기를 밤새도록 지분거리며 놀릴 작정인가 미심쩍어하며 그녀가 물었다. 그러자 천사는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세게 내리쳤고, 루비는 숨 막힌 소리를 냈다.

그는 그녀에게로 몸을 숙이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됐나?”

루비는 살짝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별로. 더 세게 해봐.”

그는 그렇게 했다. 루비는 베개를 단단히 움켜쥐면서, 숨 막혀 헐떡이고, 또 헐떡였다. “좀 나은데- 나아- 아, 좋아.” 그녀는 간신히 말했다.

“그런가?”

“아, 그냥 얼른 넣어 줘.” 그녀는 숨이 턱까지 차서 말했다.

그녀는 양 허벅지 사이에 있는 천사의 손과, 뒷목덜미에 닿은 그의 입술을 느끼며 절정에 이르렀다. 그도 그녀를 침대로 세게 밀어붙이며 얼마 후 뒤를 따랐다.

*

"자네는 저 야만적인 놈들에게 너무 심하게 관대하군, 카스티엘." 삼하인이라는 악마가 부활하는 것을 막으려다가 실패한 후 천국으로 돌아오며 우리엘이 말했다. "우리가 그냥 개미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이 대륙을 싹 쓸어버리기만 했으면, 우리가 오래 전에 그렇게 하기만 했다면, 우리가 지금 닥친 문젯거리들은 거지반 생겨나지도 않았을 거네."

천국이 민주 체제가 아닌 까닭은 여럿 있는데, 우리엘도 아마 그 이유 중 하나였으리라. 카스티엘은 지상 임무에서 우리엘이 자신과 한 조로 정해진 데엔 무언가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여태까진, 아무 의미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 게 하느님의 뜻이셨다면, 지상은 영겁도 전에 멸망했겠지." 그가 말했다. "그리고 아직도 지구는 여전히 존재하네. 인류가 수많은 죄악을 범했는데도."

우리엘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음 번 그가 악마를 만나러 찾아갔을 때 카스티엘은 이 대화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카스티엘이 퇴치한 악마가 그녀를 은신처까지 미행한 시점에서 천국의 입장에서는 그녀는 쓸모가 없어졌다. 우리엘이 그 사실을 안다면, 그는 아무 주저 없이 그녀를 죽일 테지. 그리고 이제는, 카스티엘에게도 그녀를 내버려 두지 말고 도와야 할 책임은 전혀 없었다.

악마는 그를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게 되어 놀란 듯했지만, 이윽고 표정이 밝아져서는 자신이 웅크리고 누웠던 침대 옆자리에 함께 누우라는 뜻으로 한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안 그러겠다." 그는 말했다. 솔깃한 생각이긴 했지만.

"뭐, 지금은 안 돼?" 침대에 누운 채로 몸을 쭉 뻗으면서 그녀가 물었다. 카스티엘은 그녀의 목선을 눈으로 쫓았다가, 숨을 들이쉬고는, 눈을 감았다.

천사들은 신체 접촉에 마음이 끌리기도 하지만, 그들은 인간- 과 악마- 이 그렇듯 섹스에 탐닉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람의 몸에 들어가 지낸 생활은 카스티엘의 행동에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또, 악마와 함께 보냈던 밤을 인간 육체의 충동 탓으로만 돌린다면 새빨간 거짓말이 될 것이다.

"너를 덮치러 오는 악마들이 있다." 다시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가 말했다. 그녀는 이 말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그는 그녀를 호텔 방 바깥으로 순간이동 시키고 완전히 나라 반대편까지 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악마가 새로 세들 방을 구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녀를 찾는 악마들을 손 봐 주러 돌아갔다.

"릴리스 아래에서 일하는 놈들이야?" 카스티엘이 돌아오자 그녀가 물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의심스럽군." 그가 말했다. "너는 다른 일에 우연히 휘말린 게 틀림없다."

악마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오하이오에 사는 여자 ...초능력자 이야기였어, 내 생각에는. 이름은 해나, 아니면 애나일지도 몰라. 그들은 그녀를 손에 넣고 싶어 했어."

"그런데 너는 내게 말하지 않았단 건가?"

하느님, 우연의 일치로 두어 주소서, 그는 기도했다. 틀림없이 초능력이 있고 천국과 아무 관련 없는 애나라는 여인은 오하이오에 수천 명은 있을 겁니다, 그 중 한 명이라고 넘겨 주소서. 천국이 한때 함께 싸웠던 전우를 죽이러 군대를 파병하지 않게 해 주소서.

"관심을 안 뒀거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 나서, 카스티엘의 얼굴 표정을 뚜렷이 알아차린 그녀는 물었다. "왜, 당신 뭐 좀 알아?"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가 대꾸했다.

악마는 킥킥 웃고는, 누워 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그의 무릎 위에 올라탔다. "다 내 일인걸." 그녀는 말하고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말해 줘."

"그만둬라." 하려고 했던 것만큼 강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카스티엘은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날 이 일에 끌어들였잖아. 설명 정도는 해 주는 게 예의지." 그의 허리띠를 풀고, 손을 바지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악마가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둘 중에 예의 있는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 누군지 가르침을 내렸다. 여러 차례, 퍽 만족스레.

*

천사는 그녀에게 납작 엎드리라고 말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서는, 이윽고 아무 말도 흘리지 않은 채로 날아갔다.

자연히, 루비는 혼자 힘으로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많은 걸 알아내지는 못했다. 여자의 성은, 밀튼인 것 같았고, 그녀는 초능력자일뿐더러 모 병원에 갇힌 정신병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왜 악마들이 그 여자에게 그리 큰 관심을 두는지 알지 못했다, 세상에 초능력자가 그 여자 한 명밖에 없지는 않을 텐데.

"뭔가 중요한 사건이라면, 신경을 쓸 거다." 루비가 다시 말을 꺼내 그를 성가시게 하려 하자 천사가 말했다.

"당신이 내게 마음 쓰는 것처럼?"

그는 그녀를 깜짝 놀랄 정도로 차가운 표정으로 보았고, 루비는 알몸뚱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는 너무 질문을 많이 하는군."

"당신이 질문을 하라고 나한테 말했어."

"너는 물을 만큼 물었다." 천사가 말했다. 그는 그날 밤 루비를 외롭고 화가 난 데다, 몹시 달아오른 채로 혼자 보내게 내버려 두었다.

바로 다음날 아침 그녀는 짐을 꾸리고는 윈체스터 형제를 찾아, 초능력을 가진 여자 일을 그들에게 넘겨주러 길을 떠났다.

천국의 일을 천사의 손에서 빼앗아오더라도 자신에게 아무 해는 없으리라고 그녀는 판단했다. 그녀는 이미 영원히 저주받았으니, 절대 더 나빠질 리는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 쓰라린 교훈을 얻게 되었다.




후편: 프쉬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