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5일 금요일

[녹는점 05][딘/캐스/딘] 침입


제목: Breaking And Entering
작가: strangeandcharm
링크:http://strangenessandcharm.dreamwidth.org/101099.html
창작일: 2008-11-15
등장 인물: 샘, 딘/카스티엘
등급: PG-13
단어 수: 6,100
줄거리: 전투 중에는 부상병이 발생하기 마련이며, 누구나 제대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네, 녹는점 연작의 다음 작품이 왔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도저히 이걸 놓을 수가 없는가 봐요. (연작의 시작 녹는점을 보시려면 여기로). 지금까지 방영된 4시즌 분량의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주의: 앵스트, h/c(이번만큼은 카스티엘 차례입니다. 불쌍한 딘은 고통을 받을 만큼 받았잖아요.) 방영된 분량 이상을 지어내어 쓴 픽이지만, 아직은 AU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조만간 크립키에게 뒤집힐 거라고 확신할 수 있군요! (아참, 이야기의 배경 장소가 궁금하면 여기를 보세요. 멋지더라고요!)

전편: 그 모든 것의 끝




~ ~ ~


볼드윈 배수지 내부
이전까지의 사건은 전부 국지적인 충돌에 불과했다. 지금 이것은 전쟁이었다. 샘의 생각으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대대적인 전면전, 선혈과 내장이 튀는 전투였다. 그는 악마들이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천사들이 그들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며 그가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이란 관념을 모조리 헝클어 놓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일어나고 있는 일의 끝모를 거대함에 압도당한 채 방관자가 되어 형의 곁을 지켰고, 마침내- 마치 지금까지는 모르기라도 했던 양- 깨달았다. 이건 그 자신의 목숨이나 형이나 바비 아저씨나 그런 그들이 아는 사람들만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전세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들은 버려진 정수장 밖에 서서 눈앞에 펼쳐지는 이 전쟁의 첫 번째 진짜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고 많은 장소 중 클리블랜드에서. 더 전쟁터다운 곳일 워싱턴 DC나 뉴욕이 아니라 말이다. 더군다나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몰랐다. 반경 수 km 안에 인간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천사들은 상황을 조정하고, 인간에게 귓속말을 하면서, 주 정부가 거짓 화학물질 유출 명목으로 봉인 근방 지역을 소개(疏開)하도록 확실히 일처리를 했다. 샘은 무척이나 기뻤다. 그는 천사가 민간인의 죽음을 부차적인 피해로 여기고 개의치 않을까 봐 두려워했지만, 우리엘을 비롯해 소수만이 그렇게 무심한 것 같았다. 나머지는... 글쎄, 나머지는 카스티엘과 비슷했다.

그 카스티엘은 지금 그들 앞에 서서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과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며 번뜩이는 섬광과 낮게 울리는 천둥을, 싸움을 응시하고 있었다. 연기와 빛과 안개가 자욱하여 그가 보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잘 분간할 수 없었던 샘은 계속해서 다시 카스티엘의 등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에 의지해 정신을 다잡았다. 사방의 모든 자가 지옥에 대적해 싸우거나 지옥을 지상으로 불러 오려 하는 이 와중에는 고요하게 우뚝 선 그에게 집중하는 것이 안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겠냐?” 딘은 초조하게 카스티엘에게 물었다. “너한테는 보여?”

형이 난투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 좀이 쑤신다는 것은 명백했지만, 그는 저 무리 속에서는 단 십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가 가진 것은 루비의 칼이 전부였다. 샘은, 능력 덕분에 조금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겠지. 1분이나 어쩌면 2분 정도. 상대는 그야말로 너무도 수가 많았다.

“보인다.” 카스티엘은 차분히 말했다. “아무런 변동이 없군. 여기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아.”

“개년의 새끼들.” 딘은 빙글 돌아서더니 샘의 등뒤 벽을 발로 차면서 욕설을 했다. “믿기지가 않아!”

“그가 옳아, 형. 가야 해.” 이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샘은 딘과 똑같은 기분, 어쩌면 그보다도 더한 기분이었다. 순전한 절망감, 모든 전투의 근원이 1km도 안 되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들 눈앞에서 선과 악이 대결하는데 그들은 거기 무슨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너무 작고 미미한 존재이기만 하다는 것을 아는 기분. 샘은 그 빌어먹을 놈 덕에 '힘'을 소유했지만, 가진 능력을 고려해도 저기서 분전하는 전사들 앞에서 자신은 한 마리 버러지에 불과했다. 덕택에 그는 왜 천사들이 처음 만났던 자리에서 자신이 능력을 사용한 것을 놓고 그렇게 떠들썩하게 굴었던 건지 의아해졌다.

“꽁무니를 빼는 것 같잖아.” 형은 그를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틀림없이 뭐라도 있을 거라고!”카스티엘이 그들을 향해 돌아섰다. “살아남을 수가 있지.”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따라와라.”

그는 그들을 정수 시설 측면을 따라 인도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소음과 열기 대부분을 그들에게서 차단해 주었다. 전방을 바라본 샘은 카스티엘이 위험이 없나 사방을 살피며 성큼성큼 잔디를 가로질러 그들이 임팔라를 주차했던 장소로 다시 데려가고 있음을 알았다. 튀어오르려고 도사린 고양이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등을 굳힌 딘이 바로 뒤를 슬금슬금 따랐다. 샘은 그들이 과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에 잠겼다. 이따금씩 악마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있을지를 아는 모양인지 최단 코스로 달려왔다... 나 때문이지. 혹시 그의 능력이 그를 무슨 특별 목표물로 만드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 그는 죄책감에 싸여 생각했다. 아자젤이 만들어낸 아이를 죽여서 보너스 점수를 얻어라! 천천히 죽이고, 고통을 주면, 상품으로 막대사탕을 받는다지! 

그들은 지상으로 1m 정도 올라온 지하 배수지의 드넓은 지붕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표면을 덮었던 흙과 잔디가 세월이 지나며 떨어져 나가 벌어진 틈으로 콘크리트가 오후의 회색빛 속에서 바랜 뼈다귀처럼 드러나 있었다. 근처에 엄폐물이 될 만한 것은 마땅히 없었고, 카스티엘은 멈추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좌우로 시선을 주었다.

“서둘러.” 그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재촉했고, 평소 동요하는 법이라고는 없던 그의 얼굴이 그런 표정을 띤 것을 보자 샘의 등줄기에는 오싹한 공포가 달렸다.

바로 그 때 그들은 날카로운 악을 쓰면서 그들을 향해 흘러오는 구름을 보았다. 그걸 따돌리고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젠장.” 샘이 숨을 삼켰다.

“이 안으로!” 딘은 그의 뒤에서 작열하는 연기 덩어리에 더는 곁눈질도 하지 않으며 소리를 쳤다. 낮은 비탈을 달려 내려가 배수지의 거대한 녹슨 철문을 힘껏 당기기 시작한 그는 돌멩이와 흙덩어리를 발부리로 걷어차며 문을 열기 위해 가망 없을 듯한 안간힘을 썼다. 샘도 형의 곁으로 가서 근처 손잡이를 다부지게 잡아당겼지만, 문은 약간 틈이 벌어지는 데 그쳤다. 딘은 목의 힘줄이 불거지도록 용을 쓰며 좌절감이 서린 고함을 내질렀다.

카스티엘이 한 손을 들어올리자 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컥 열렸고, 그 서슬에 놀란 윈체스터 형제는 바닥에 나동그라질 뻔했다. “들어가라.” 그가 외쳤다. “어서!” 그의 등 뒤에서 어렴풋이 들끓기 시작한 폭풍우에서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며 코트가 나부끼자 그는 왜인지 몰라도 다르게 – 강대하게 보였다. 마치 무언가 극도로 어마어마한 일을 행하기 직전 같았다. 샘은 그를 거의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그는 비틀비틀 출입구를 통과하고 딘을 안으로 끌어당기는 한편 반대편에 위치한 불을 밝혀 줄 듯한 레버를 본능적으로 쳤고, 그게 통하자 안도하여 숨을 골랐다. 그들 머리 위 12미터 천장에 열을 지은 백열등이 일제히 켜지더니 멀리 빛을 뿌리며 텅 빈 배수지의 광대하고 벽면이 너덜거리는 내부를, 마치 교회 안처럼 천장을 떠받친 거대한 기둥을 비추었다. 시멘트와 콘크리트의 조합으로서는 기이하게도 아름답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지하 공간이 워낙 넓은 나머지 건너편 벽은 샘의 눈에는 보이지조차 않았다.

“카스티엘!” 딘의 외침이 사방으로 그들을 둘러싼 벽에 메아리쳤다.

샘은 입구 쪽으로 뒤돌아섰다. 그들을 등지고 문틀을 막아서서 거의 그들을 따라잡은 악마 무리와 그들 사이에 방어선을 형성한 카스티엘의 실루엣이 보였다. 샘이 바라보는 동안 문 하나가 소름끼치는 우지끈 소리를 내며 빗장부터 우그러지더니 금속이 뒤틀리고 쥐어짜이다 급기야 빙빙 돌며 공중으로 날아가며 카스티엘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문이 보이지 않는 힘에 밀려 덜커덕거리기 시작했다. 악마들은 사냥감이 배수지를 방어벽 삼아 숨지 못하게 하는 작업 중이었다.

“도망쳐!” 카스티엘이 명령했고, 반짝거리는 빛이 그의 발치에서부터 형성되더니 이윽고 눈을 찌르는 환한 광채가 전신에 어렸다. 샘은 두말할 필요 없이 따랐지만, 딘은 아니었다. 그는 카스티엘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작게 내뱉었다. “싫어…”

“가자고!” 샘이 쏘아붙였다. “그가 한 말을 듣지 않으면 형 눈은 타버릴 거야!”

“난 못 가…”

샘이 형의 팔을 끌어당기며 몇 걸음을 뛰고 난 후에야 마침내 말뜻을 이해한 딘도 달리기 시작했다. 콘크리트를 달음질치는 발자국 소리가 광대한 지하 공간에 울려 퍼졌지만 문간에서부터 점점 높아지는 절규 소리는 무엇으로도 묻히지 않았다 – 분노와 고통에 사로잡힌 악마가 그르렁거리며 내지르는 뒤틀린 쇳소리는. 빛이 머리 위 조그마한 백열 조명을 집어삼키며 너무 밝아져 마치 등뒤에서 누가 불길을 일으킨 것처럼 되더니, 괴성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그 순간은 단 몇 초만에 끝났고, 이후 광채는 차츰 빛을 잃고 악마들의 외침소리는 변화했다. 승리의 함성으로.

샘의 전신에서 피가 얼어붙었다.

바로 그 때 폭발이 그를 덮쳐 공중으로 내동댕이쳤다.


~ ~ ~


그는 콘크리트 바닥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세게 충돌했지만, 즉각 다른 부상은 없음을 알았다. 비어버린 허파를 가득 채우려고 애쓰던 그에게 등뒤에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바닥이 진동하며 먼지가 일었고 튀어오른 돌조각이 작은 비가 되어 등뒤로 쏟아지는 것을 느낀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일분쯤 지나자 잡석의 비는 그쳤고 불길한 정적이 그의 주위에 내려앉았다.

그는 느리게 일어나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배수지 안은 이제 아까 전보다 어두웠다. 문 가까이에 있던 전구는 많은 수가 박살이 났고, 지하 공간을 소용돌이치는 먼지 구름에 가려 그나마의 빛도 약해진 상태였다. 남은 빛에 의지한 샘의 눈에 거대한 기둥 예닐곱 개가 마치 별 것 아닌 성냥개비처럼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흩어진 것이 비쳤다. 천장에는 엄청난 금이 가 있었고 공기는 유황이 섞여 쓰라렸다. 뒤틀린 철근과 녹슨 대들보와 함께 쌓인 콘크리트 덩어리의 뾰족뾰족한 무더기가 배수지 입구의 잔재 전부였다. 입구는 완전히 붕괴한 상태였다.

샘은 경악하여 입을 벌렸다. 그들은 이 안에 갇혔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딘이 기침을 했고 샘은 정신을 추스리며 눈을 깜빡였다. 형에게로 기어간 그는 형도 이미 네 발로 기어오고 있음을 보고 안심했다. “형, 괜찮아?” 그는 형의 등에 손을 얹고 물었다. 

딘은 다시 한 차례 기침을 하고서 입가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그가 까끌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떨어지는 통에 숨 쉬기가 힘들긴 한데, 그것 빼곤 괜찮아.”

“나도 그래.” 딘은 몸을 일으켜 꿇어앉았고 샘은 형의 눈 옆의 베인 자리에서 피가 뺨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지만, 심한 상처는 아닌 듯했다. 딘은 힘겹게 숨을 몇 차례 들이킨 다음 그들의 등 뒤에 펼처진 초토화된 풍경으로 몸을 돌렸다. 

“망할,” 그는 공포로 입을 헤 벌리더니 숨을 삼켰다. “어떻게 된 거야?” 곧 그의 눈은 화등잔만해졌다. “카스티엘은 어디 있지?”

샘은 가슴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난 그건 생각조차…

딘은 샘이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일어섰다. 광활한 공간을 전력으로 내달려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더미에 이른 그는 올려다보고서 충격을 받은 듯 손을 이마에 댔다. “카스티엘!” 그는 이름을 한 번 부르고, 다시 더 커진 목소리로 불렀다. “카스티엘!”

샘도 형이 있는 곳으로 가서 돌무더기를 헤치는 것을 도왔지만, 그는 밑바닥까지 탐색할 만큼 콘크리트 덩어리를 치우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혹시 카스티엘이 저 밑에 있다면, 끌어낼 도리는 없었다.

“어쩌면 몸을 피했을지도 모르지.”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애쓰는 듯한 목소리로 그가 감히 의견을 냈다. “천사는 이런 사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분명- 천사란 거의 무적이잖아.”딘은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힐끗 보았다. “천사들도 죽기도 해, 샘! 부상도 입고 – 난 본 적이 있어, 그가 보여 줬었어, 그렇게 되기도 한다는 걸 말이야. 혹 이게 보통 폭발이었다면 카스티엘은 무사하겠지만, 이건 어떤 악마적인 에너지로 야기된 폭발이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이…” 그는 문득 말을 그치더니 샘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고함쳤다. “카스티엘!” 갈라지는 목소리였다.

샘은 전신이 싸늘해졌다. 카스티엘이 죽는다? 그다지도 강대한 원초적 권능을 발산하며 문간에 곧추선 것을 방금 전까지 자신이 목격한 존재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의 인지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렇다, 릴리스가 봉인을 풀기 시작한 이래로 여러 명의 천사가 죽었고 지금도 죽고 있지만, 카스티엘은 아니었다. 그 어떤 불상사도 그에게는 일어날 리 없어 보였다... 그는 그들의 천사가 아닌가?

그리고 형은 – 오 맙소사, 형은 그를 좋아했고, 어쩌면 사랑하는 건지도 모른다. 확실하게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샘은 카스티엘이 죽는다면 딘이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이미 저다지도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을. 말도 안 돼. 그가 죽을 리 없다.

“카스티엘은 무사할 거야.”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 “우리가 그를 찾아낼 거야. 계속 뒤져 보자.”

“하느님 굽어 살피소서. 그가 악마에게 죽기라도 했다면...” 딘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느님은 지금 당장은 그다지 굽어 살피시지 않는 듯했다.


~ ~ ~


십 분 후 잡석에 파묻힌 손 하나를 발견한 샘이  쉰 목소리로 딘을 불렀다. 그들은 쌓인 무더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을 힘을 합쳐 한쪽으로 치우고서는 천사의 가슴을 짓누르던 사람 크기의 콘크리트 판의 양쪽 끝을 나란히 잡고 젖 먹던 힘까지 쓰느라 끙끙대며 느리게 옮겼다. 카스티엘의 몸이 드러나자마자 딘은 털썩 그 곁에 무릎을 꿇었고 샘은... 샘은, 그저 뚫어지도록 바라보기만 했다.
카스티엘의 감긴 눈에는 이마에 깊게 갈라진 상처에서 흘러내려 고인 피가 흥건했다. 딘은 꿈틀거리는 기색조차 없는 그의 목에서 맥을 재고는 맥박을 찾아내자 안도한 나머지 고개를 수그렸다. 맥이 뛴다는 것은 사실상 기적이었는데 카스티엘의 상태가 워낙 엉망이기 때문이었다. 먼지와 피가 뒤섞여 범벅이었고, 왼쪽 무릎 위에 드러난 뼈가 돌출되어 있었으며 한쪽으로 뒤틀린 오른팔은 부러진 게 분명했다. 가슴은 오르내리고 있었으나 콘크리트 덩어리에 눌렸던 허파와 늑골이 찌부러진 모양으로 얕게 헐떡이는 호흡이었다. 그 위로 몸을 숙인 딘이 목구멍 깊이서부터 비탄에 잠긴 소리를 -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 발하는 내내 그는 의식이 있다는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샘은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에 몸을 돌렸다.

“새미.” 딘이 목쉰 소리로 말했다. “여기 지혈하는 걸 좀 도와 줘.”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심호흡을 한 샘은 찢어서 붕대를 만들 목적으로 겉에 입은 셔츠를 벗어젖히면서 형에게 합류했다. 넋나간 얼굴로 천사의 부러진 뼈에 부목을 대고 가장 심각한 상처부터 싸매려 노력하는 딘은 몸에 밴 응급처치 훈련 덕에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이 완연했다. 샘은 최선을 다해 도왔고, 그 너무도 미동 하나 없는 몸을 옮겨서 카스티엘을 바닥에 반듯하게 눕히려고 노력하는 딘에게 힘을 보태는 한편 눈을 불태우고 고막을 터뜨릴 수 있을 만큼 강대한 실체를 지녔던 그 존재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고민했다. 뭔가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 어느덧 그는 혹 카스티엘이 단지 이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두고 떠난 것뿐인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지만,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자 딘은 고개를 저었다.

“카스티엘은 아직 여기에 있어.” 그는 완고하게 말했다. 샘은 형의 손을 흠뻑 적신 피를, 목소리에서 미약하게 묻어나는 충격을 무시하려 노력했다. “난 있다는 걸 알아. 기필코 그를 데리고 나가야 해. 그에겐 도움이 필요해.”

“밖에는 아직 악마들이 있어.” 딘이라고 그 점을 잊었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샘은 조용히 말했다. “어, 내가 한번 둘러볼게. 혹시 여길 나가는 다른 뒷길이 있는지 말이야.”

“그거 괜찮군.” 눈길을 주지 않고 딘이 말했다. 피에 젖은 카스티엘의 가슴에 한 손을 얹고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그는 마치 의지의 힘만으로 손 밑의 허파에 공기를 불어넣으려 애쓰는 듯 보였다.

샘은 일어서서 가려고 몸을 돌렸지만, 딘은 다시 그를 불렀다. 그는 다른 손으로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가.”

“형은 어쩌고?”

“여긴 안전할 듯싶다.” 딘은 폐허가 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개자식들은 구역 전체가 붕괴되고 우린 모두 깔려 죽었을 거라고 생각할 것 같아.”

“영 빗나간 생각인 건 아니네.” 되돌아온 샘은 천장에 난 균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천장이 얼마나 무너지지 않고 버텨 줄지 잘 모르겠는걸.”

그는 벽 어딘가 문의 흔적이 있는지를 살피러 지하 공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나섰다. 딘과 카스티엘을 단둘이 두고서.

옛 시절에는, 그가 그런 걸 생각만 해도 질겁했었다는 게 기이할 정도였다. 시대는 변한다. 그리고 항상 좋은 쪽으로 변하는 건 아니다.


~ ~ ~


그는 배수지의 광막함에, 마치 <반지의 제왕> 1편에 나오는 모리아 광산의 내부처럼 먼 곳까지 펼쳐진 기둥의 열에 압도되어 헤어날 수가 없었다. 기둥은 얼룩지고 더러웠으며 몇십 년동안 채워져 있던 수돗물이 남긴 잔여물로 덮여 있었지만, 이제 물은 말라 버린 지 수 년이 된 것이 분명했다. 20세기 초반의 공학이 남긴 위업인 이 배수지는 인상적인 건축물이었지만… 마치 무덤 같은 풍경은 보는 자의 기를 꺾는 모습이기도 했다. 오래지 않아 샘은 한때 물을 뽑아내던 배수 시설이 콘크리트로 막혀 있음을 발견했다. 다른 문도 출구도 없었다. 나가는 통로는 중앙 출입구뿐이었다. 영원히 간데없이 사라진 그 길.

탐사를 마친 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이 일은 그저 카스티엘을 구해내는 것 이상이 되었다.

우리 중 누구라도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 ~


“어쩌면 천사들이 우릴 찾아낼지도 모르지.” 그는 넌더리를 내며 신호 없음 문구를 백 번째 반짝이고 있는 핸드폰을 닫으면서 형에게 넌지시 말해 보았다. “분명 우리가 이 아래 있는 걸 알 테니까?”

“그건 이 전투에서 어느 편이 승리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딘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콘크리트 위에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다리 사이를 요람 삼아 카스티엘의 머리를 떠받치고 있었다. 의식이 없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한쪽 손의 붉어진 손가락은 먼지로 뒤덮인 피부와 대비되어 도드라졌다. “우리가 종적을 감췄다는 걸 눈치챌 틈이 한동안 없을지도 몰라.”

“분명 카스티엘이 부상을 당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형을 마주보고 앉은 샘은 차가운 바닥에서 편안한 자리를 찾으려 노력하며 기둥이 쓰러진 한쪽에 조심스레 기대었다. “그러니까 말이지, 천사라고 전지전능이 아닌 건 알지만, 그런 걸… 느낄 수는 있지 않겠어?”

딘은 고개를 저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걸. 설사 그들이 오고 있다 해도, 너무 늦기 전에 꽁무니 불나게 뛰어오지 않으면 소용없겠군 그래.”

샘은 카스티엘을 물끄러미 보며 침묵에 잠겼다. 형이 옳았다. 카스티엘은 오래 살아남기엔 너무 위중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카스티엘이 단순한 인간이었다면 필경 벌써 숨을 거두었을 테지만, 그는 아직 생명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다리의 출혈은 멈췄어?” 희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는 물었다. 그건 그냥 무슨 말이라도 꺼내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경이 곤두선 웃음소리를 낮게 픽 흘렸다. “하지만 그게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 부상을 입은 부분은 이 육체가 아닌 것 같아.”

샘은 눈만 껌벅였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이 어디 있어?”

“뭔지는 몰라도 악마 놈들이 카스티엘의 실체에다 무슨 짓을 한 거란 생각이 들어. 그게 우리 눈에는 이렇게 보일 뿐이고. 하염없이 이 몸을 수습하더라도 진짜 상처는 다른 데 있는 거지.”

 “형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그의 형은 한숨을 쉬었다. “그냥… 알아. 그런 느낌이 와. 어떻게 된 거냐고 묻지는 마. 벌써 나부터가 놀라 자빠지겠단 말이다.”

샘은 자기 손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딘의 손만큼이나 피에 절지는 않았지만, 손가락 끝에는 여전히 붉은 기가 있었다. 그는 딘과 카스티엘이 이어진 것 같은 종류의 유대를 지니고 있는 것은 어떤 감각일지 생각했다. 금지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결속은 여전히 존재했고 딘은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그의 생각은 오랫동안 하느님과 천사들에게 기도하였지만 아무 응답도 받지 못했던 그간의 세월로 옮겨 갔다. 그는 프로비던스에서 유령이 자신이 샘에게 계시를 내리러 온 천사라고 그를 속였을 적에 어떤 감동이 밀려왔었는지를 기억했다. 이제 그는 진실을 알았고, 무리지은 하느님의 사자를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형은 정말로 카스티엘을 좋아하는구나, 그렇지?” 그는 목소리에서 질투하는 티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물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럴 장소도 아니고.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해도 좋을 만한 때가 언제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딘은 길게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그가 말했다.

샘은 목구멍이 죄어드는 느낌이었다. “형, 정말로 미안해.”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딘은 샘이 안간힘을 써야 겨우 들을 만큼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이런 무력한 기분이 싫어. 이 빌어먹을 전쟁 전체가 우리가 손쓸 수 있는 범위에서 너무도 멀리 벗어나 있단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도대체 날 왜 되살려 냈는지 이해가 안 될 뿐이라고!”

마치 딘의 괴로움을 감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돌연 무릎 위에 있던 카스티엘의 머리가 약간 움직였다. 그는 목 뒤쪽 어딘가에서부터 살을 에는 듯한 신음을 들릴 듯 말 듯 냈다.

“캐스?” 딘이 그의 뺨을 토닥거리며 화급히 말했다. “카스티엘?”

천사의 눈꺼풀이 실룩거렸다. 샘이 터질 듯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지켜보는 동안 딘은 제발 눈을 뜨라고 그에게 애원했다. 몇 초 뒤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속눈썹이 떨리며 눈을 뜬 파란 눈동자가 딘을 응시했다.

“어이.” 딘이 말했고 샘은 너무도 차분하게 들리는 그 목소리에 놀랐다. “잘 돌아왔어.”

카스티엘은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괴롭게 헐떡거렸다. 반은 씨근거림, 반은 신음인 소리를 흘리며 바닥에서 경련하던 그는 무사한 쪽의 팔을 들어 손을 가슴에 가져갔다. 몇 초가 지나서야 샘은 분명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까닭은 뭔가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탓이라고 생각한 그가 그걸 치우려고 애쓰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괜찮아.” 딘이 손을 잡으며 그를 달랬다. “괜찮아. 아무것도 없어. 이젠 없어. 내가 널 꺼냈어, 캐스.”

카스티엘은 눈을 까뒤집고 다시 신음성을 발했다. 딘은 무력감이 어린 눈빛을 샘에게 던졌고,  샘 역시도 이런 끔찍한 광경을 보느니 그냥 이 자리에서 죽고만 싶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카스티엘의 모습이라니 뭔가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너무도 인간 같은 모습. 너무 연약한 모습이었다. 이 순간 딘의 마음이 어떨지 샘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낮고 빠르게 무슨 말을 속살거리기 시작한 천사는 점점 밭은 숨을 쉬었다. 샘은 가까이 다가갔고 아리송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 그와 딘은 천사가 그들이 아는 어느 언어와도 다른 말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뭐지?” 딘이 물었다.

“히브리어인가?” 카스티엘의 입술 가까이 몸을 숙인 샘이 대답했다. “아니군. 뭔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말에 리듬이 있는데... 무슨 성경 같은 걸 암송하고 있는 걸까?”

돌연 딘은 겁이 나면서도 안도한 얼굴이 되었다. “어쩌면 기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도움을 청한다고 말이지.”

샘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지금 같은 상황에는 좋은 방안이겠는데.”

카스티엘은 갑자기 말을 내지 못하면서 끊어질 듯 거세게 기침했고 그 서슬에 샘은 놀라 움찔 물러났다. 그는 상체가 땅에서 들릴 정도로 격렬하게 숨이 막혀 헐떡였다. 딘은 그를 받치려 한쪽 팔을 아래에 넣었고 즉각 카스티엘은 무의식중에 팔 안으로 안겨들었다.

샘은 걱정에 찬 눈을 딘에게 흘끗 던지고는 달리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외투를 벗어 피에 젖은 가슴팍에 덮어 주었다. 그는 예전에 카스티엘도 그를 위해 똑같은 일을 했음을 문득 기억했다.

“난 뭘 해야 하지?” 평소의 그와는 전혀 딴판인 목소리로 딘이 물었다. “새미, 내가 뭘 해야 할까?”

“형은 기다려.” 부드럽게 말한 샘은 형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서 그가 할 수 있는 보잘것없는 위로를 선사하려 팔에 몸을 기대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야.”

~ ~ ~

수 시간이 흘렀고, 샘은 전기가 아직까지 머리 위 불빛에 공급되고 있다는 건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감사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흑 속에서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낸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차마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끔찍했다.

어느 순간 그는 딘이 그 시간 내내 카스티엘의 얼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야심한 시간이 되어서야 천사는 다시 움직거렸다. 기둥에 등을 기대는 위치로 자리를 바꾼 딘은 다리를 앞으로 뻗고 무릎 위로 비스듬하게 카스티엘을 누이고 있었다. 그는 샘을 따라 벗은 외투로 카스티엘이 다리에 입은 처참한 부상을 덮어 두었는데, 아마 무엇보다 딘 자신을 위함이었을 것이다. 걱정으로 속을 끓이는 것에도 한계가 온 샘은 몇 시간 전부터 그 피에 절은 모습을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디-딘?” 카스티엘이 눈을 감은 채 헐떡였고 샘은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카스티엘의 손을 꼭 잡으며 딘이 대답했다.

카스티엘이 흡 숨을 들이켰다. 자그맣게 흐느끼는 소리를 뱉고 눈을 뜬 그는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붙잡히지… 않았군.”

딘은 고개를 저으며 얄궂은 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네가 그놈들을 터프한 힘으로 물리쳐 줬잖냐. 그때 너 정말 장난 아니었는데.”

몸서리를 친 카스티엘은 고르지 못하게 호흡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릿해진 눈은 샘에게 한동안 머물렀고 샘은 미소를 지어 주었다. 카스티엘은 고통으로 주름이 패인 얼굴로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까닥여 답했다. 그가 시선을 돌리자마자 샘은 숨을 세게 들이마셨다.

“왜-왜 아직 이 안에 있는 거지?” 카스티엘은 낮고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딘은 불편한 기색으로 샘을 흘끗 보았다. “갇혔어. 출입구가 무너졌거든.”

카스티엘은 탄식하며 눈을 감았다. “내- 내 힘이 모자랐다.”

“알아, 괜찮아. 그래도 네가 우릴 구했다는 건 변함없잖아. 어떻게든 나갈 방법이 있겠지. 넌 낫는 일에만 신경 써.”

“너무 늦었다.” 카스티엘이 대답했고 딘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뺨을 손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사적인 장면이니만큼 샘은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애초부터 그가 봐도 괜찮은 광경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아니야.” 딘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겨낼 수 있어. 넌 강하잖아.”

“너-너무 벅차군.” 카스티엘이 다시 눈을 뜨며 신음했다. “내 몸을 치-치료하는 건 불가능해. 하지만 너-너희들을 밖으로 보낼 수는 있다.”

“널 두고는 못 가.” 딘이 그에게 말했다. 그 목소리의 사나움에 충격받은 샘은 숨을 꼴깍 마셨다.

카스티엘은 귀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그는 턱에 힘을 주고 얼굴을 찌푸린 채 피로 범벅된 얼굴로 어떤 있을 수 없는 종류의 긴장을 그리고 있었다. 지하 공간을 낮고 깊숙하게 울리는 진동이 느껴지기까지 잠시간 샘은 그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어리둥절했다.

“이게 대체...?” 먼지가 사방의 천장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와중에 딘은 입을 뗐다. 그들 뒤에서 콘크리트 석판 두 개가 드르륵 갈리다 파편 무더기 한쪽으로 떨어져 내리며 바닥에 어마어마한 균열을 만들었다.

“길을 내려고 하고 있는 거야.” 놀란 샘이 외쳤다. “우릴 내보내 주려고.”

분투하는 카스티엘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그가 용을 쓰는 소리가 커짐에 따라 지하 공간의 진동도 함께 세어졌다. 이리저리 구르면서 서로 부딪치는 파석은 천사의 몸이 경련하는 것에 맞추어 움직였다. 추락한 돌덩이가 하나하나 움직일 때마다 그의 폐에서는 괴롭게 안간힘을 쓰는 헐떡거림이 새어나왔다. 딘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불안한 얼굴로 돌무리의 움직임을 뚫어지게 보았다. 샘은 천사가 지닌 힘에 압도당했다. 부상당한 몸으로도 그는 수 톤이 넘는 바위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는 걸까?

한계는 있는 모양이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쐐기가 쇄석 더미 꼭대기에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카스티엘이 갑자기 흰자위를 드러내고서 바닥에서 등을 젖히며 끔찍한 고통에 찬 울부짖음을 질렀다. 배수지의 벽에 극심한 고통의 소리가 메아리치자 단 몇 초 사이에 불가능한 지경으로 커진 다른 소음이, 흐느끼는 웅웅 소리가 함께 섞여 울려퍼졌다. 이 악몽 같은 소음이 바로 카스티엘의 진짜 목소리임을 깨달은 샘은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았다. 찰나 후에, 그는 목이 졸리는 듯한 고함을 역시나 내지른 딘이 카스티엘의 가슴을 꽉 안고 무릎에서 일으키는 모습을 곁눈으로 보았다.

“그만둬.” 미칠 듯한 걱정이 담긴 눈을 휘둥그렇게 뜬 딘이 헐떡이며 어깨 너머로 간신히 말했다. “그만! 너한테 이건 무리야! 더는 안 돼!”

카스티엘은 그의 몸에 기대어 기침했고 샘은 딘의 목에 핏방울이 어룽지는 것을 보았다. 곧 그는 붙들린 채 축 늘어졌고… 그들 사이에서 솟구치던 맹렬한 힘은 생겨났던 것만큼이나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자기도 모르게 가쁘게 숨쉬며 주저앉아 있던 샘은 귓가에 자신의 숨소리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음을 느끼고 이 정적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들어 본  가장 영광된 소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형을 올려다보았다. “방금 그건…” 그는 입을 열었지만, 뭐라고 말을 끝맺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딘은 이마에서 흐른 땀을 번득이며 카스티엘의 얼굴을 경이에 차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내보내 주려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그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또다시. 우리를 구하려고 죽을 뻔한 거야.” 그는 심란한 숨소리를 삼켰다. “그가 지르던 비명소리 들었어?”

샘은 말이 나올 것 같지 않아 고개만 끄덕였다. 카스티엘이 너무도 움직임이 없었기에 그는 초조하게 목에 손을 갖다대고 맥박을 쟀다. 그는 맥박을 찾았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맥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박동하고 있었다. 의식을 잃은 천사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고통 어린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가에는 피얼룩이 있었다. 샘은 자신이 가진 힘을 쓸 때마다 얼마만한 통증이 따르는지 알고 있었다. 얼마나 두통이 격심할 수 있는지, 힘을 쓴 후 몇 시간 동안 얼마나 속이 메스꺼운지를... 그리고 그는 카스티엘도 힘을 쓸 때 같은 느낌인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아마 더 순수한 느낌이겠지.

“이러고 있는 것도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 돌연 딘이 말했다. 샘은 그를 올려다보고 그의 눈이 무언가를 담고 번득이는 것을 보았다– 아마 분노, 혹은 결단. 형은 손을 내밀었다. “칼 좀 줘.”

“왜?” 샘이 아연해서 물었다.

“그냥 좀 줘 봐.”

그는 딘의 손에 칼을 넘겨 주고 딘이 칼로 카스티엘의 코트 왼소매를 가르고 피묻은 부분을 뜯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딘은 코트 안 셔츠도 찢어 젖혔고 샘은 드러난 것을 보고 숨막힌 소리를 냈다. 딘의 팔에 있는 것과 똑같은 손자국이 낙인처럼 살에 새겨져 있었다.

“그건 어쩌다 생긴 거야?” 어안이 벙벙해진 그는 물었다.

“내가 만들었어.” 딘은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그는 칼을 내려놓고 자국 위에 손바닥을 딱 들어맞게 댔다. 그는 샘을 올려다보고  미안한 듯이, 이상스럽게도 슬픈 미소를 싱긋이 지었다. “저번에 우리 둘이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길 했었지. 이건 그 통로 중 하나야.”

“그렇지만 형이 어떻게…?” 샘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딘이 어떻게 저걸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형의 손이 저렇게 살갗을 태울 수 있었지?

“마법이지.” 딘은 비꼬는 투로 대꾸했다. “나도 몰라, 됐냐? 그냥 그렇게 됐다고. 그리고 난 그렇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아.”

“뭔데?”

“덕분에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으니까.”

딘은 손을 카스티엘의 팔에 세게 누르며 눈을 감고 집중했다. 샘은 완전히 당혹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기다리며 지켜보았다. 몇 분이 지나고 딘의 호흡이 느려졌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때 카스티엘이 눈을 번쩍 뜨는 바람에 샘은 화들짝 놀랐다. “안 된다.” 그는 딘에게로 홱 시선을 돌리며 쉰 목으로 말했다. “하지 마.”

“닥쳐, 캐스.” 딘은 눈을 감은 채로 대꾸했다. 머나먼 곳을 헤매는 듯한 목소리였다. “너도 날 위해서라면 똑같이 했을 거잖아.”

“안 돼.” 카스티엘이 다시 말했다. 그는 딘이 누른 손에서 몸을 떼려고 애썼지만 딘은 다른 한쪽 손으로 그를 그 자리에 붙들었다. 좌절한 천사는 샘을 올려다보았다. “딘이 이러도록 두지 마." 그가 신음했다. "그에게 너무 위험하다!”

샘은 천사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마음과 도대체 무슨 놈의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그와 딘을 번갈아 보았다. 이전에 카스티엘이 악마와 대면했을 때 번쩍이는 광채를 발하던 것과 똑같은 식으로 딘의 손에 약한 빛이 맺히기 시작한 것을 알아챈 그는 놀라 눈을 깜빡였다.

“제발… 새뮤얼.” 카스티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풀이해 말했다. “그가 이래선 안 돼… 그는 영혼을 내게 주고 있다…”

한기가 샘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뭐라고?

“형, 난 이게 별로…” 그가 말을 시작했다.

“새미, 네가 나한테 손끝 하나라도 대면 우린 둘 다 죽을 수도 있어.” 바닥에 누운 카스티엘이 절망 어린 신음성을 흘리는 한편 딘은 쏘아붙였다. “물러나 있어.”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카스티엘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는 거지.” 형은 대꾸했고, 이제 팔꿈치까지 올라온 빛이 더욱 밝아지자 몸을 약간 좌우로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덤으로 우리 생명도 구하고 말이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린 여기서 다 죽는 길밖에 없다고.”

“안 돼.” 카스티엘은 간절하게 속삭였지만, 눈꺼풀은 감기고 있었다. 딘을 둘러싼 빛이 더욱 강렬해지는 것과 함께 그의 머리가 한쪽 옆으로 털썩 떨어지며 얼굴에서 힘이 빠졌다. 딘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헐떡였고 샘은 딘의 전신으로부터 파문처럼 번지는 광채가 온몸을 감싸고 지하 공간을 아름다운 금색 빛으로 채우는 것을 경외감에 휩싸여 지켜보았다.

“형.” 눈앞에 보이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벙벙해진 샘이 살며시 말을 내뱉었다.

딘은 황홀경에 빠진 듯한 신음성을 크게 질렀다.

카스티엘을 내려다본 샘은 쓰러진 그의 전신에도 빛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고 경악했다. 빛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상처가 회복되며 피와 흙먼지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양 분해되어 사라졌다. 딘이 극히 조심스럽게 팔다리에 묶어 주었던 부목과 붕대는 저절로 풀려 바닥에 흩어졌다. 몸 아래의 직물 조각이 스스로 짜이더니 이윽고 카스티엘의 옷가지는 말짱하고 깨끗해졌다. 카스티엘의 이마에 있던 베인 상처가 샘의 눈앞에서 아물더니 몇 초 후 핏자국이 사라지고, 카스티엘의 의식 없는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부드러워지면서 평온함이 자리잡았다.

그가 치유되었다.

샘은 입을 쩍 벌렸다. 심장이 불가능할 정도의 속도로 고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형이 천사에게 영혼을 부어 주고 있는 건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어떻게 형이 그를 치유할 수 있는 거지?

딘을 내려다본 그는 갑작스런 공포로 뱃속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지금 형은 몸을 뒤로 젖히고 얼굴은 고통인지 분투인지 모를 것으로 일그러진 채 거칠어진 숨을 불규칙하게 쉬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빛은 희미해지면서 카스티엘에게로 옮아가는 중이었고 감자기 샘은 천사가 했던 위험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영혼을 너무 과하게 주고 있는 거야, 그는 소스라치며 깨달았다. 막아야 해!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팔을 뻗어 딘의 어깨를 붙들고 있는 힘껏 카스티엘에게서 잡아뗐다. 단 몇 초밖에 소요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느낌에는 훨씬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그가 예상치 못한 것은 그 사이 그를 휩쓸던 감각이었다- 온기와 빛이 폭발하는 느낌에 그는 숨막히는 소리를 냈다. 마치 방금 그가 콘센트에 손가락을 집어넣었고 전류가 몸을 관통해 흐르는 듯했다. 너무 빨리 지나간 나머지 간신히 분별하는 것이 고작인 여러 이미지가 별안간 마음속을 스쳤다- 어린 시절 까르르 웃는 그 자신, 딘을 얼싸안는 아버지, 샌드위치를 먹는 딘을 보며 기쁜 듯이 미소짓는 어머니… 행복의 영상이, 딘의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들의 파도가 연이어 밀어닥쳤다. 이 느낌에 압도되어 큰 헐떡임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들렸지만, 소리조차 완전히 씻겨 내려가 버리더니 다른 감각이 그를 거세게 때렸다. 카스티엘이었다. 그가 어떻게 소리내어 웃는지, 어떻게 키스하는지, 촉감이 어떤지, 그가 얼마나 위험하고 강력하며 다정한지, 이어 섹스에서만 얻을 수 있는 열화 같은 욕망과 짜릿한 도취감이 뒤를 따랐다. 딘이 느꼈던 것들을 경험하자 샘은 크게 탄성을 냈다…

…그러더니 그 모든 것은 사라졌다.

그는 밭은 숨을 얼굴 주변의 시멘트 먼지가 날릴 정도로 몰아쉬며 차가운 돌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아직 딘의 감정 속에 빠져 헤매느라 제정신을 추스리는 데는 한참이 걸렸지만, 마침내 형을 걱정하는 마음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었다.

딘은 그의 앞에 눈을 감고 팔을 벌린 채 누워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은 무섭도록 창백했다. 샘은 형의 이름을 외쳐 부르며 몸을 숙여 다급하게 활력 징후를 찾았다. 그는 무사해 보였지만, 샘이 흔드는데도 눈을 뜨지 않았다.

“미안하다.”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샘은 움찔하며 좌우를 살피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고통 어린 표정으로 말아쥔 주먹을 옆구리에 붙이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카스티엘이 서 있었다.

“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샘이 다그쳐 물었다.

카스티엘의 눈에는 격심한 괴로움이 역력했다. “그는 이전에 어떤 인간도 한 적 없는 일을 했다.”

“형이 당신한테 영혼을 준 거 맞죠? 당신을 구하려고?”

“난 그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왜 그랬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카스티엘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가 왜 그랬던 거지?” 그는 짧게 뜸을 들인 후에 다시 말했다. 완전히 당혹한 목소리였다.

불현듯 샘에게 기억의 편린이 스쳤다. 딘의 기억이었다. “모르겠어요, 카스티엘?” 그는 절망한 나머지 분노한 소리를 뱉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멍청이 같으니. 당연히 형으로선 그렇게 해야만 했던 거라고요.”

카스티엘은 날카롭게 숨을 삼켰다. 그는 망연한 얼굴이 되어 한 발짝 뒷걸음질쳤지만, 샘은 그를 다독거려 줄 시간이 없었다.

“얼마나 있으면 형이 깨어날까요?” 그는 불안스럽게 물었다. “몇 시간?”

카스티엘은 샘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네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야 해. 그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샘은 울화가 불쑥 치미는 것을 느꼈다. “무슨 뜻입니까? 기다리면 깨어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요?”

천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올리고는 깨어진 돌더미 사이로 출구를 내는 작업을 재개하는 그의 얼굴은 마치 몇 톤이 넘는 콘크리트를 오직 염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마치 매일 일과처럼 해치우는 일이기라도 한 양 무표정했다.

샘은 그쪽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반응이 있길 바라며 다시 딘을 흔들었다.

다음번에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카스티엘은 사라지고 없었다.


~ ~ ~

후편: 인간의 중간

[livejournal.com profile] rumi_nyo님의 팬아트 - http://strangenessandcharm.dreamwidth.org/1171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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